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독일/과거사 청산 문제 (문단 편집) === [[나미비아 학살]]과 논란 ===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_118738350_mediaitem118738349.png|width=100%]]}}} || || 나미비아에 세워진 희생자 추모 동상 || 한편 과거 [[식민지]]로 삼았던 [[탄자니아]], [[나미비아]] 등 [[아프리카]] 국가들과 같은 [[제1차 세계 대전]] 이전 아프리카 국가들의 식민지 침략이나 학살과 인권 탄압 등에 대해선 대부분 유럽의 강대국 국가들이 그렇듯 국가간 차원에서 합의된 배상과 사과가 이루어진 적이 없다. 따라서 연구에 따르면 현재 독일인들은 과거 독일이 제국으로 군림하던 시기와 오늘날 토고, 나미비아, 부룬디, 탄자니아 지역에서 살인을 저질렀던 데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https://www.bbc.com/korean/international-57388110|나미비아 대학살: 독일이 여전히 비판 받는 이유]]] 특히 [[나미비아 학살]]과 관련해서는 2004년 하이데마리 비초레크초일 경제협력개발부 장관의 사과가 있었으나, 정부 차원에 담화 수준이 아닌 장관 개인의 말 한마디에 불과했으며, 독일 정부는 이것이 개인적인 견해일 뿐이라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446184|헤레로 전쟁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다원적 관점의 독일 식민주의 역사교육]]] 이마저도 [[나미비아 학살]] 피해자인 헤레로 부족이 미국 법정에 독일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배배상 소송 취하를 요구하면서 언급한 것이었다.[* [[https://www.yna.co.kr/view/AKR20040814000400082|1백년전 잔혹한 식민통치 역사에 시달리는 독일]]] 독일 정부는 이렇듯 역사적 과오나 국제법상 국가책임 자체는 인정하되, 본론 격인 '''구체적 배상문제'''와 관련하여서는 피해자 측에 대하여 국내외법상 근거를 엄격히 요구하거나 관습 국제법이나 지엽적 절차법의 문제를 들어 강경하게 반대하는 경향이 있다.[*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850432|독일의 전후 배상 실행에 관한 최신 연구: 나미비아 등 구 식민지 지역을 중심으로]]] [[독일 제국]]은 1904년 1월12일 나미비아 수도 빈트후크 북쪽 70㎞ 지점의 오카한자에서 헤레로족과 나마족이 일으킨 봉기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만 명을 학살했다. 독일의 인권단체 '위협받는 민중을 위한 모임(GfbV)'은 2004년 초 보고서에서 "독일인들이 저지른 최초의 '인종학살'에 의해 약 7만 5천 명이 사망했으며 많은 수가 국외로 탈출해야 했다"고 밝혔다.[* [[https://www.yna.co.kr/view/AKR20040814000400082|1백년전 잔혹한 식민통치 역사에 시달리는 독일]]] 2004년에 하이데마리 비초레크초일 독일 경제협력개발부 장관은 [[독일 제국]] 시기 자국의 식민지에서 발생한 이 [[나미비아 학살]]과 관련하여 "독일은 헤레로 부족에게 특별한 책임이 있다"며 사과를 언급하긴 했지만 독일 정부로부터 '장관 개인의 견해'라고 선이 그어져 '반쪽짜리'라는 비난을 받았다. 학살에 관해서도 개별적 배상을 하진 않았고 대신에 나미비아 정부에 대한 경제원조를 해왔지만 자국의 식민지 과거사를 완전히 인정하는 것을 항상 꺼려왔다. 피해자인 헤레로 부족은 명확한 사과와 나미비아 내에서 소수 인종인 자신들에 대한 직접 배상을 요구했는데, 독일 측은 이를 거절했다.[* [[https://www.yna.co.kr/view/AKR20040814000400082|1백년전 잔혹한 식민통치 역사에 시달리는 독일]], [[https://www.bbc.com/korean/international-57388110|나미비아 대학살: 독일이 여전히 비판 받는 이유]]]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_118707745_gettyimages-1024992934.jpg.png|width=100%]]}}}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l_2021060601000933700076722.png|width=100%]]}}} || || 독일과 나미비아 정부의 협상에 반대하고 있는 전통 부족 지도자들 || 수도 윈드호크에서 [[나미비아 학살]]에 대한 독일과 나미비아 정부의 합의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는 나미비아 시민들 || 독일은 2021년 5월 28일, [[나미비아 학살]]에 대해 공식적인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독일은 1990년 나미비아 독립 후 상당한 개발원조를 해왔다는 이유로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응하지 않다가, 2015년에 들어서야 양국 정부간 논의를 시작했다. 나치 홀로코스트 범죄에 대한 독일의 태도와는 대조적이다.[* [[https://m.khan.co.kr/world/world-general/article/202106061817001|아프리카 향한 독일·프랑스의 잇딴 사과, 그러나 청구권은 없다?]]] 독일은 사과 성명과 동시에 나미비아에 30년간 11억유로(약 1조 5000억원)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중 10억 5000만 유로는 나미비아의 농업개혁, 직업교육 등 개발 지원 기금으로 조성되고, 나머지 5000만 유로는 화해재단 설립에 사용된다. 그러나 [[BBC]]는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 신중하게 작성된 성명이라며 협상이 학살 인정으로 귀결됐지만, 선언문은 공허하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독일은 나미비아에 대한 금전 지원을 '배상'이 아니라 '지원금'으로 규정했다. 독일은 이번 성명에서 '배상'이나 '법적 책임'이라는 단어도 사용하지 않았다. 또한 이 개발지원금을 근거로 들어 앞으로 법적 보상금을 청구할 수 없다고 명시했는데 이는 학살 피해자인 오바헤레로족이 독일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려고 시도하는 와중에 국가를 상대로한 청구권을 인정할 수 없다고 못박은 것이다.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는 만행에 대한 법적 책임도 지지 않고, 피해자나 후손에 대한 직접적인 의무도 지지 않게끔 했다고 보도했다.[* [[https://m.khan.co.kr/world/world-general/article/202106061817001|아프리카 향한 독일·프랑스의 잇딴 사과, 그러나 청구권은 없다?]]] 피해 당사자들이 참여하지 않은 일방적인 성명 발표였던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독일의 성명이 발표되던 시점에 오바헤레로족 등은 학살 문제에 대한 대응 방안 등을 두고 여전히 부족간 논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피해 부족들은 모욕적인 액수라며 지원금이 나미비아 집권당인 서남아프리카인민기구(SWAPO)를 지원하기 위해 사용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나미비아는 1990년 독립 이후 오밤보족이 이끄는 SWAPO가 줄곧 집권했고, 여타 부족들은 소외됐다.] 학살 과정에서 독일은 우물에 독을 풀고, 일부 유골은 실험을 위해 자국으로 반출했다. 하지만 이번 합의에서는 독일 박물관과 도서관 등이 보관 중인 유골 수만점과 예술품 반환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 [[https://m.khan.co.kr/world/world-general/article/202106061817001|아프리카 향한 독일·프랑스의 잇딴 사과, 그러나 청구권은 없다?]]] 독일이 제공하는 개발 원조금 자체에도 문제가 있는데, 아프리카에 대한 제국주의 세력의 개입을 정당화하기 위해 아프리카인을 경제적, 기술적 변화를 끌어낼 능력이 부족한 '야만인'으로 취급한 식민지 시대의 인식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개발 원조는 여전히 독일이 아프리카에 대해 가진 우월감의 일환일 수 있으며 그 결과 원조를 받는 자와 주는 자 사이엔 불평등한 관계가 유지된다.[* [[https://www.bbc.com/korean/international-57388110|나미비아 대학살: 독일이 여전히 비판 받는 이유]]] 역사학자 위르겐 치머러는 지난 29일 독일 신문 <파사워 노이에 프레세>와의 인터뷰에서 "지원금은 지원하는 쪽을 도덕적으로 우위에 놓게 한다. 반면, 배상은 내가 무언가를 잘못했기 때문에 하는 의무"라고 설명했다.[*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arabafrica/997598.html|독일, 1조5천억원으로 학살 사과 나미비아 “우리 존재에 대한 모욕”]]] 오바헤레로족과 같은 피해 부족들은 오밤보족이 이끄는 나미비아 정부에게 원조하는 것이 아니라 소외된 소수 민족인 자신들에게 직접 배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혀왔으나, 앞서 언급되었듯 독일은 이를 묵살했다. 독일 정부가 나미비아에 대한 사과를 하는 것은 동정심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에서의 영향력 확대라는 국익상의 목적이 있다. 폴리티코는 독일이 말리에 있는 유엔 평화유지 임무에 원조금을 늘리고 더 많은 병력을 투입하기로 한 데 이어 스스로 나미비아에서의 책임을 인정함으로써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의 역할을 확대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킴 바그너 런던 퀸메리대학 제국사 교수는 독일과 프랑스의 성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있었던 일을 알게 된다면, 그것은 좋을 일이라면서도 '''"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진정한 역사에 대한 인식으로 착각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https://m.khan.co.kr/world/world-general/article/202106061817001|아프리카 향한 독일·프랑스의 잇딴 사과, 그러나 청구권은 없다?]]] 따라서 독일의 이와 같은 태도는 자국이 천명하듯이 침략이나 식민지배의 과거사와 관련하여 이를 진지하게 성찰, 실천하고 있는지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독일의 반성과 사죄는 청산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거나 [[독일 재통일]]을 위하여 자세를 낮추어야 하는 최소한의 대상 국가 및 민족에 대해서만 선택적으로 구축하였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850432|독일의 전후 배상 실행에 관한 최신 연구: 나미비아 등 구 식민지 지역을 중심으로]]]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